- 2023년 6월에 진행한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입니다.
첫 기증 등록과 앞자리 일치
나는 2019년의 어느 날 헌혈의 집에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했었다. 어릴 때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해 처음 알고 난 뒤부터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2019년의 어느 날 그간 밀린 일들을 해치우는 김에 헌혈의 집을 찾아 기증 등록을 했다.
처음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할 때에는 약간의 혈액만을 채취해서 HLA 항원형(유전자)의 일부만을 확인하여 기증 희망자 풀에 등록한다. (흔히 ‘앞자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리고 한참동안 기증 등록 사실을 반쯤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0년 4월의 어느 날,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에서 첫 연락이 왔다. 등록된 HLA 항원형 앞자리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는데, 기증 희망 의사가 있는지, HLA 항원형 전체 검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간단한 문진 후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전체 항원형 검사를 위한 채혈을 했다.

전체 항원형 검사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위치한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사무실을 찾았다.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사무실은 찾기 매우 어렵다. 그 큰 성모병원에서도 사무실들만 모여 있고 환자는 오가지 않는 곳 중간에, 의대가 위치한 건물에 함께 있다. 당연히 안내판 따위는 없다. 그렇다 보니 사무실을 찾아가는 데 꽤나 고생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주 출입구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했기에 본관으로 들어가서 내부에서 이동해야 했는데, 오죽하면 담당 코디네이터조차도 사무실 위치를 찾기가 어려우니 주차요원분께 여쭤보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주차요원도 조혈모세포 은행의 위치를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하긴 병원을 찾는 수많은 사람 중 조혈모세포은행을 찾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하다. 건물에 들어서고도 15분쯤은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을 찾았던 것 같다. 일반적인 병원의 분위기가 전혀 아닌 그냥 평범한 회사 사무실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고, 한 켠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바늘과 채혈관(vacutainer)을 가져와 채혈을 했다. 채혈 며칠 후 나온 항원형 상세 검사 결과는 아쉽게도 불일치였고, 결국 기증은 성사되지 않았다.
두 번째 일치, 하지만 변경된 일정
이후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기증 등록 사실을 거의 잊어버린 채 바쁜 일상을 보내던 와중 2023년 1월에 두 번째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모르는 번호라 전화 연락을 안 받았는데, 부재중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번이라도 HLA 항원형 앞자리 일치자가 나타나 정밀 검사를 하면 전체 항원형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데, 유전자형이 완전히 일치하는 수혜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였다.
이전부터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내가 강하게 원해서 등록한 것이기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상의 없이 흔쾌히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담당 코디네이터께서는 계속 정말 기증을 할 것인지, 주변 가족들이 허락했는지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한다. 그 만큼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부닥쳐 기증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렇겠다만 나는 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런 반대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수혜자측에서 혹시 모르니 유전자 검사를 한 번만 더 해 볼 수 있겠느냐는 말을 전달받았다. 그래서 서울대입구 헌혈의집에서 담당 코디네이터를 만나 한 번 더 혈액을 채취하고 다시 항원형 검사를 했다.
채혈 과정에서 원래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의 담당 코디네이터(간호사)께서 직접 혈관을 잡으려고 하셨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담당 코디네이터께서 팔의 median cubital vein에 한 번 주사를 놓았다가 혈관을 못 잡아서 손등의 정맥에 다시 시도하셨다가, 또 실패하셔서 결국 헌혈의 집 직원분께 SOS를 요청하셨다. 헌혈의 집 직원분께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median cubital vein으로 한 번에 채혈에 성공했다. 역시 헌혈의집 직원분들은 다들 혈관 잡는 데 도가 튼 분들인 게 틀림없다. 바늘을 3개나 쓰는 채혈 끝에 얻은 정밀 검사 결과는 완전 일치가 맞았다.
유전자형이 완전 일치했고, 나의 이식 의지도 확고했기에 본격적인 이식 절차를 위해 집에 가까운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3월로 첫 이식 일정을 정하고 2월에 정밀 건강검진을 했는데, 입원조차도 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렇게 피를 많이 뽑는 검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한 병 한 병 채혈할 때마다 진공관(vacutainer)의 개수를 열심히 세어 보았는데 17병이나 되었다. 왜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때 철분 손실량에 건강검진을 위한 채혈을 포함해 계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코디네이터께서 건강검진 비용을 처리하시는 것을 봤는데 비용은 무려 1,521,886원이었다 (…) 나중에 찾아보니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혈액 검사를 전부 하는 모양이다. 건강검진 결과 별 이상 없이 기증 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와서 3월 말로 기증 일정을 정했고, 기증 일정을 기다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코디네이터께서 환자분의 상태가 좋지 않아(관해(remission)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바로 기증이 불가능하고, 기증을 5월 이후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오셨다. 결국 5월 말로 기증 일정을 미루게 되었다. 미리 생각하고 있던 일정이 틀어진 것은 불만이었지만, 인턴과 전공의가 새로 들어오고 레지던트의 연차가 막 올라가 역할이 바뀌는 3월에는 대학병원에 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는 했기에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미룬 일정인 5월에도 여전히 환자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로 잡힌 일정에도 기증이 어렵게 되었고, 건강검진 유효기간인 3개월이 다 되는 바람에 결국 다시 여의도성모병원을 방문해 두 번째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다. 5월에 두 번째 건강검진을 했고, 이번에 비용은 1,419,813원이었다. 이 비용이 결국 다 환자분께 전가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닥 편치는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건강검진을 위해 채혈을 하다가 저혈압으로 블랙아웃이 왔다(…) 원래 중고등학생까지만 더운 계절이 되면 기립성 저혈압으로 종종 블랙아웃이 오고는 했는데,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고등학생 때 헌혈을 하면서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채혈로 블랙아웃이 온 건 처음이었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한나절을 금식 후 상당히 갈증이 나는 상태로 채혈을 17병이나 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다.
블랙아웃은 12병째에 왔는데, 저혈압이 온다고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떨어뜨리니 곧바로 옆에 계시던 간호사분들이 달려오셔서 심전도실로 끌고 가시더니 침대에 눕히셨다… 사실 블랙아웃은 몇 초 안 갔고 끌려가는 것부터는 기억이 있기는 한데… 너무 죄송해서 정말로 괜찮다고 일어나려고 해도 계속 다시 눕히고 팔을 주물러주셨다… 수면내시경 후 스스로 괜찮다면서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는 환자를 다시 눕히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검사가 끝나고 평소 물처럼 들이키던 커피를 잔뜩 마셨는데 계속 갈증이 난 걸 보면 상당한 탈수 상태였던 것 같다. 작은 사고가 있었던 2차 검사였지만, 건강에 별 이상은 없었기에 기증 가능 판정이 나와서 그대로 기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기증 준비
인터넷에서 다양한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를 찾아 읽어 보면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기증 전 준비를 위해 주사하는 G-CSF(그라신, filgrastim)로 인한 전신 통증이다. 잠을 자기 힘든 수준으로 엄청나게 아프다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걱정했다. 1, 2차 모두 검사 전 담당 의사선생님께 간단한 진료를 받았는데, 진료를 본 혈액내과 교수님께 어떤 약들을 먹을 수 있는지 여쭤 보았다. 이부프로펜(ibuprofen)과 같은 NSAID는 물론 타이레놀(paracetamol), 트라마돌(tramadol)같은 마약성(opioid계) 진통제라도 얼마든지 투여해도 되니 아프면 참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트라마돌이나 펜타닐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웬만한 약을 투여하더라도 조혈모세포 채집 과정에서 혼입되는 양은 워낙 극미량이라 그런가 싶다.
2차 검사 후 최종 기증 일정을 잡았고, 6월 25일 입원, 26일 기증, 27일 필요에 따라 2차 기증 후 퇴원으로 최종 일정이 정해졌다. 조혈모세포 기증 전에는 준비를 위해 기증자에게 G-CSF를 투여하며, G-CSF를 투여하면 골수에 있던 조혈모세포(CD34+)들이 혈액으로 튀어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튀어나오는 조혈모세포의 비율은 매우 낮기 때문에 골수의 기능이 저하되지는 않는다.) 이 주사를 맞으면 온몸이 쑤시는 수준에서 시작해 몸살로 앓아눕는다는 사람은 물론,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는 평이 많이 있었기에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아파 봤자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 생각했다. 그라신 투여를 위해 조혈모세포은행에 직접 방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근처 의원에서 투여받기로 하고, 6월 21일에 입원 전 투여할 3일분의 G-CSF를 퀵서비스로 받았다. 투여량은 600μg/d였고, 300μg의 시린지 두개를 양 팔에 각각 SC로 주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라신을 받으면서 3일의 투여 일정을 미리 잡고 투여할 병원을 정했다. 1일차에는 저녁 이후에만 시간이 되어 집 근처의 병원 응급실에서 투여했고(대기가 길 수 있다는 안내가 있어 걱정했는데 10분정도밖에 안 기다렸다), 이틀차에는 담당 코디네이터님과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투여받았으며, 사흘째에는 저녁 이후에만 시간이 되어 첫날과 같이 집 근처의 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다. 사흘째에 투여해 주신 간호사의 주사는 다소 인상적이었는데, 주사기의 공기도 안 빼고 거침없이 2초만에 내용물을 모조리 밀어넣었다. 3일차의 주사는 좀 무섭긴 했지만 3일 모두 주사 자체가 딱히 아픈 적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예방접종 정도.
기증을 마치고 되짚어 보면 나는 G-CSF의 부작용이 심하진 않았던 편인 것 같다. 약간의 뼈 통증이 있기는 있었는데 그것도 2일차 저녁 이후부터나 살짝 있는 수준이었고, 약한 몸살기운은 있었지만 열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움직이려고 할 때 몸이 나른해진 게 조금 느껴지는 정도였다. 뼈 통증은 운동 후 근육통 정도 수준이라 참고 지낼만도 했는데 굳이 참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약을 먹었다. 나는 특히 척추에서 통증이 있었는데, 뼈 통증이라는 느낌 자체가 난생 처음 받아 본 느낌이라 신기했다. 그라신과 함께 받은 타이레놀도 먹고, 이부프로펜도 먹어 보았는데 다행히 NSAID나 타이레놀만으로도 통증은 많이 완화되었다.

들어가면 범퍼나 타이어 중 한 곳은 긁고 나오는 걸로 유명한 여의도성모병원 주차장을 세 번이나 갈 줄은 몰랐다. 다행히 나는 안 긁음.
입원, 기증 준비.
6월 25일 저녁 늦게 여의도성모병원에 입원했고, 마지막으로 그라신을 한 차례 더 투여했다. 그런데 입원하러 들어간 나는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한 번 입원하면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걸 몰랐다. (보안팀 직원이 안내 안 받으셨냐고 하는데… 그런 안내는 전혀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두고 온 물건마저도 담당 간호사랑 같이 외출해서 가져와야 했기에 꽤나 진땀을 뺐다. 혹시라도 여의도성모병원에 입원할 계획이 있다면 한 번 입원 수속을 밟은 환자는 혼자서 건물 밖 외출이 전혀 불가능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입원실은 여의도성모병원 13층의 1인실을 배정받았는데, 노량진수산시장과 올림픽대로, 그리고 노들로가 한 눈에 들어오는 뷰가 인상적이었다. 환자용 침대는 모든 것이 일체형이다 보니 누워서 노트북을 포함해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병실에는 TV가 있었지만 HDMI 케이블이 없어 아쉽게도 노트북에 연결해서 사용하지는 못했고, 지상파 방송만 볼 수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코디네이터님이 준비해 주신 레몬 케이크와 우유, 그리고 주스 몇 병이 있었다. 간식은 코디네이터님께서 적당히 골라서 채워주신다던데, 미리 선호하는 간식을 말씀드려야 했나 싶다. 케이크는 양이 꽤나 많았는데 너무 달아 얼마 먹지는 못했고, 다음 날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따로 사 왔다. 입원 후 저녁 늦게 담당 간호사님께서 왼팔에 카테터를 꽂아 주셨다. 이전에 입원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카테터를 꽂으면 팔을 거의 못 쓰는 게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고 샤워도 혼자 할 수 있었다. 여름날이었던 지라 에어컨을 틀어도 입원실이 다소 습한 것은 불만이었다. 널어 놓은 수건은 아무리 기다려도 축축했고, 옷에 물기가 묻으면 통 마르지를 않았다.

입원한 날 여의도성모병원의 야경. Sony A7R V, Sigma 24-70mm f/2.8 DG DN Art.


기증 준비와 채집
다음날인 6월 24일 아침부터 바로 본격적인 기증 준비에 들어갔다. 아침은 금식하고 바로 기증 절차를 시작했다. 나는 검사 때부터 팔 혈관이 얇아서 양 팔에 혈관을 하나씩 잡는, 일반적으로 성분헌혈을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 아닌(조혈모세포 기증은 원리적으로 백혈구 성분헌혈과 동일하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해서 조혈모세포를 채집하기로 했다. 그래서 먼저 쇄골하정맥을 통해 중심정맥관을 삽입했다. 정맥관 삽입은 혈관조영실로 이동해서 진행했다. 혈관조영실로 이동 전 직원의 안내에 따라 피어싱을 빼고 폰이나 전자기기를 모두 둔 채 이동용 침대로 옮겨 누웠다. 멀쩡히 걸어다닐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환자용 침대에 누워 이동 보조 직원들께 몸을 맡기는 기분은 참 오묘했다. 이동 보조 직원들은 다들 머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는데, 만약 hy 프레시매니저의 전동카트처럼 침대가 전동으로 움직였다면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채 1층 방사선실을 지나 조영실까지 자리를 옮겼다.


중심정맥관 삽관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전자기기는 물론 읽을거리조차 없는 채로 조영실 앞에서 이전 환자의 시술이 끝나기까지 무료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다린 시간은 30분정도밖에 안 됐을 것 같긴 한데 읽을거리도, 구경할 것도 없이 혈관조영실 문 앞에서 맨 천장을 바라보며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의료진들이 나를 혈관조영실 안으로 데려갔다. 안내에 따라 수술대로 자리를 옮기니 의료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라고 하시고 몸에 수술포를 덮었다. 바로 앞에서는 의료진이 주사 몇 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부분마취 주사액이 포함되어 있었고 정확히 어느 주사를 사용했는지는 잘 보지 못했다. 수술포 옆 틈으로 혈관 조영 화면을 살짝 볼 수 있었는데, 뛰고 있는 내 심장에 카테터(카테터는 수술 편의를 위해 X선으로 잘 보이는 선이 그려져 있어 조영 영상에 매우 선명하게 보인다)가 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모 의사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화면 속 모습이 섬찟하지 않았느냐고 하시던데 나는 그저 흥미롭게만 봤던 것 같다. 중심정맥관 삽관은 그 자체가 아프진 않았는데, 처음에 피부를 절개할 때와 봉합할 때가 육성으로 소리를 낼 만큼 아팠다. 사실 금방 끝나는 시술 수준의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어쨌든 엄연히 조영장치와 함께 수술용 침대에서 진행하는 일이다. 삽관 자체는 10분이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삽관 이후 순서는 조혈모세포 채집. 먼저 병실로 다시 올라가서 폰과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챙겼다. 채집에 걸리는 몇 시간을 전자기기 없이 보낼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걸을 수 있는데…) 옆에 노트북과 폰을 낀 채 헌혈실까지 이동했다. 헌혈실 한쪽 끝에 나를 위한 침대와 장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채집에 사용한 장비는 Terumo BCT사의 최상급 모델인 Spectra Optia로, UI가 완전 한국어로 되어 있어서 꽤나 흥미로웠다. 과연 이렇게 번역해서 얼마나 팔까, 한국에서 파는 대수 자체가 매우 적을 텐데도 전체 UI가 번역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채집 직전 하이드로코르티손(스테로이드)과 아트로핀(부교감신경 억제제), 페니라민(1세대 항히스타민제)을 투여했다. 세 약을 각각 왜 투여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여쭤 보았지만 명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간호사님께 여쭤 보니 소염제랑 알레르기 억제제라는 설명을 들었다. 대체 그 약을 왜 투여하는지가 궁금했던 건데… 지금 생각하면 코르티손과 페니라민은 채집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염증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서, 아트로핀은 채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저혈압을 막기 위해서인가 싶다. 채집은 총 4시간 이상이 소요되는데, 양 팔 혈관에서 채집을 하면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고 계속 주먹을 쥐었다 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중심정맥관을 사용했기에 양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채집을 시작하니 급격히 추위가 느껴졌는데, 침대에 마련되어 있던 담요 한 장으로는 모자라서 간호사님께 담요 한 장을 더 부탁드려서 덮고 있었다. 처음에는 혈액이 차가운 기계를 통과하기 때문에 추위가 많이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두 겹의 담요로 온 몸을 덮고 나니 페니라민 때문인지 급격히 졸음이 쏟아져서 초반에는 잠시 자기도 했다. 그러다 깨었더니 더 이상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고, 폰을 보며 대부분의 남은 시간을 보냈다. 전체 채집 소요 시간은 약 4시간 30분이었다.

퇴원과 마무리
채집을 마친 뒤 채집된 조혈모세포(CD34+ cell)의 수를 측정하고, 환자분께 필요한 양(5*10^6/kg)이 충분히 채집되었다면 다음날 오전, 그렇지 않으면 오후 4-5시쯤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궁금해서 논문을 찾아보니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에서 이식하는 CD34+ 세포 수가 5*10^6/kg 정도까지는 세포의 수가 많을수록 생착 성공률이 높아지고, 그보다 더 많은 수를 이식한다고 해서 성공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한다(Alexandra Pedraza 외, 2022, DOI: 10.1016/j.jtct.2022.12.005). 문제는 셋째 날, 즉 퇴원일 오후에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세미나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입원 일정을 정할 때에는 늦어도 오후 2시경 퇴원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방법은 없었다. 그냥 세포가 잘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둘째 날에 채집이 끝난 뒤 기증 확인서와 상패, 그리고 기념품을 전달받았다.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를 계속 헌혈실에서 보냈기에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병실에 올라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채집을 마친 뒤 병실에 도착했더니 점심이 놓여 있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앱을 사용해서 식사 메뉴를 미리 선택할 수 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야 먹을 식사로 메밀소바를 고른 것은 큰 실수였다. 면이 모조리 붇고 굳어서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을 했고, 전날 밤에 제대로 못 잤던 잠을 보충했다. 둘째 날 혈액검사에서 나온 혈중 백혈구 수치는 40.68*10^9/L. 통상적으로 정상으로 취급하는 범위의 4배가 넘는 값이다. 잠시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시간 즈음 채집된 조혈모세포의 결과가 나왔다. 약 11*10^6/kg. 환자에게 이식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양이다. (기증 직전에 안내받기를 ‘1차 기증 수 개월 후 환자분의 상태에 따라 2차 기증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하셨는데… 속으로는 ‘그냥 지금 절반은 냉동해놨다가 나중에 쓰면 안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더 이상의 추가 채집이 필요하지 않기에 바로 중심정맥관을 제거했고, 팔에 달려 있던 카테터도 제거했다. 수술실에서 진행했던 삽관과 달이 중심정맥관은 13층의 처치실에서 간호사님이 제거해 주셨다. 제거하는 모습이 조금 궁금해서 거울을 보고 싶었다. 엄청 긴 따뜻한 호스가 쇄골 부근에서 스윽 빠져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제거 직후 바로 거즈를 대어 주셨고, 거울을 채 보여주시기도 전에 모래주머니로 누르고 있으라고 하셔서 자세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꺼낸 카테터라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바로 버리신 것 같아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중심정맥관 삽관 부위는 이후 3일간 매일 포비돈요오드로 소독하고 드레싱 밴드를 붙이라고 하셨다. 생각보다 상처가 작았는데, 길이 약 5mm 정도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저녁식사를 하고, 가져 온 카메라로 노량진의 야경 사진을 여러 장 담았다. 병원 구경을 하다가 편의점에도 가고, 노트북으로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둘째 날 밤도 깊었다.


셋째 날 아침, 간호사님께서 들어오시면서 잠에서 깼다. 사실 입원 내내 밤잠은 편히 잘 수가 없었다. 3일차에는 새벽 5시에 간호사님이 들어오셔서 채혈을 하고, 6시에는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시고, 7시에는 아침 식사가 오고, 8시에는 의료진께서 중심정맥관 삽관 부위를 소독하러 오셨다. 그리고 검사 때 진료받으면서 뵈었던 담당 혈액내과 교수님이 9시에 회진을 오셨다. 피곤해 죽겠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몸 괜찮으냐고 물어보시는 걸 속으로는 그렇게 자꾸 찾아오셔서 안 괜찮다고 하고 싶었다. 그래도 오전에 퇴원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10시경 퇴원 심사가 완료되었고, 병실에서 짐을 챙겨 씻고 내려갔다. 그리고 담당 코디네이터님을 다시 만나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고, 이전의 건강 검진 결과가 궁금했기에 건강 검진 결과 사본을 받았다. 이 정도로 다양한 항목의 건강검진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결과가 궁금했다. 3일간의 총 입원비는 건강보험 적용 없음 + 1인실로 무려 2078950원. 검사비를 포함하면 총 500만원 정도의 금액이 환자분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기증 과정이 끝났고, 오전에 퇴원한 나는 바로 대학원 세미나를 들으러 학교로 향했다.
이후에 수혜자분의 근황에 대해서 들은 바는 없었지만, 무사히 관해되셨으면 좋겠다.